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송가 79장 (통 40장)
1)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2) 숲 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3) 주 하나님 독생자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주 내 모든 죄를 대속하셨네
4)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후렴)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말 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예수님은 이 땅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쉼’을 주시기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라보신 인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자들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인간의 모습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모습으로 비추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본래 빚으신 모습대로 살지 아니하고 그들의 뜻에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실제는 ‘바벨’이었습니다. 인간들은 그들이 만든 ‘역청과 벽돌’로 하나님 나라가 아닌 그들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들은 본래 빚어진, 본래의 목적에 따라 살지 아니했습니다.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그들에 매고 있던 ‘역청과 벽돌’은 ‘무거운 짐’일 뿐이었습니다. 인간들은 그 속에서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신 ‘나’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모습의 인간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역청과 벽돌로 인간들이 지으려고 했던 인위적으로 모든 삶의 방식과 반대되는 ‘아날로그’적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편리와 속도, 획일성을 강조하는 삶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의 파장’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보이셨습니다. 능력이 있음에도 우리들의 삶에 맞게, 우리들의 시간 속에서 함께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본래 지으신 ‘본래의 나’의 모습에 맞게 함께하셨습니다. 그렇게 빚어가셨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맙시다. 우리는 바벨 시스템 속에서는 ‘만들어진 나’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 즉 ‘본래의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바로 그곳에 참 평안과 안식이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당신의 인도하심 가운데 우리가 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가 당신의 이끄심 안에 만났다는 사실을 평생에 잊지 않게 하시며 항상 당신의 인도하심 가운데 나아가는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또한 특별히 믿음의 여정 가운데, 날마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나아가는 가정 되게 하시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가는 기쁨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옵소서.
좋으신 하나님, 사랑하는(000)를 우리 가정에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시간 기도하며 나아가는 것은 사랑하는(000)가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깊이 깨달아 알게 하시옵소서. 어떤 피조물도 목적 없이 의미 없이 지어진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움직인다는 것을 사랑하는(000)가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목적과 부르심을 깊이 깨달아 아는 사랑하는(000)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좋으신 하나님, 사랑하는(000)를 당신의 날개 아래 품으시고 지금까지 이끌어 오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이 시간 기도하는 것은 사랑하는(000)를 통해 예수의 형상이 이 땅에 온전히 비추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000)가 가는 곳마다, 회복과 치유 그리고 영적 돌파의 일들이 있게 하시옵소서. 또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성실하게 사랑하는(000)가 나아갈 수 있게 성령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